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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대표 국제신문 아침숲길 칼럼게재
[ 2021-05-06 12:09:16 ]
글쓴이  
관리자      

[아침숲길] 집, 미술공간이 되다 /배미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5-04 19:17:0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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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이 돋은 나뭇가지와 청동단검, 부채, 그리고 거울이 담긴 항아리를 옆에 두고 분홍빛 저고리에 남색치마를 입은 여인이 짧은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게 되는 당차고 기개 있어 보이는 ‘여인’(박항률, 1996)은 어언 20년째 집 안방을 지키고 있다. 부엌에는 역시 노래 잘하고 글 잘 쓰는 여인 ‘아나벨 뷔페’(베르나르 뷔페, 1960)의 초상이 조그만 액자 속 엽서에 담겨 설겆이하는 나와 늘 눈을 마주친다.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안방과 부엌에는 나의 초상이라 여기는, 아니 내가 닮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내가 매일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지, 오늘도 잘 살았는지, 행복한지,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상처주지 않았는지, 약속은 잘 지켰는지’ 등등.

삶에 대한 작가의 성찰과 철학을 담은 미술작품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지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시나브로 행복을 쌓아가는 일임을 알기에 이런 행위가 자신들의 보편적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정신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무뎌지고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외부 전시장이 아닌 나의 솔직한 삶이 녹아들어 있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집에서 차분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안정을 취하고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려는 것은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그 곳에 머무는 사람의 흔적을 간직한 집은 미술작품과 마주하는 그들의 감정도 품게 한다. 그래서 미술작품이 있는 집에서는 예술이 삶이 되며, 마침내 삶과 예술이 융화되는 경이로운 삶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 집은 그저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의 집은 나를 표현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심미적인 기대가 채워지는 곳으로 인식된다. 거주하는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만족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공간에 가감 없이 적용함으로써 자신 만의 안락한 집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미술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고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집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더는 일부 사람들의 호사가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 된 지금, 작품이 주는 위안을 집에서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미술작품이 머물고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공간이 부여하는 의미로 인하여 작품에 대한 인식, 감상의 정도가 다양하게 변화되며 작품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한다. 그래서 가장 효과적인 미술작품 감상은 공간과 작품을 하나의 요소로 인지하는 것인 바 작품의 의미는 공간의 해석에, 그리고 공간은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재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집은 미술작품과 공간을 동일시하여 작품과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아주 훌륭한 전시공간이 될 수 있다. 공간과 미술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집은 작품이 주는 의미를 극대화시키고 새로운 감동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집이 진정한 미술공간이 되려면 단순히 작품을 진열하고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애정을 쏟아야 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부단히 고뇌하고 노력했을 작가를 생각하고 작품 의도에 공감하려는 자세로 자신을 성찰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사랑을 통해 ‘집’은 비로소 자신과 작가가 진정으로 소통하는 미술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향수가 밀려오는 날이면 작품이 품고 있는 고향을 느끼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한다. 작품에 얽힌 사연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나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 인연이 있는 작품은 반드시 나를 찾아오게 돼 있으며 또 나에게 잘 살고 있는지 늘 질문을 던진다. 집과 작품은 한 덩어리가 돼 나에게 의미를 지니고 자신이 되며 결국 삶이 된다. 작품을 즐기고 사랑하는 보통 사람들이 그림 한 점을 집에 걸고 서로 소통하며 지친 삶을 위로 받았으면 한다.

갤러리이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