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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대표 국제신문 칼럼(아침숲길) 기고
[ 2021-07-07 18:58:54 ]
글쓴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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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천국으로 가는 계단 /배미애

  • 배미애
  •  |   입력 : 2021-07-06 19:32:5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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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현대를 사는 우리는 매일 맞닥뜨리게 되는 크고 작은, 그리고 중요하거나 조금 덜 중요한 과제들을 숙명처럼 받아들여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산다. 얽히고설킨 인간사의 어렵고도 버거운 과제가 나한테만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다는 사실에 간혹 위안을 받지만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나 자신만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과제 앞에서는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다 미완의 과제에 대한 쓰림이 아물기도 전에 어김없이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지면서 생의 전제를 누릴 시간이 점점 주는 것 같다.

철학자나 종교인, 예술가들은 그들의 연구와 작업을 통해서 당시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분석·해석하고 정의해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이 지상이 더는 천국이 아님을 계속 일깨워준다. 물질의 확장과 정신의 부재 속에서 고통의 굴레를 뒤집어 쓴 채 천국으로 가는 계단 언저리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방황함을 경고한다. 그러나 그들은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 더 나아가 평온과 행복마저 추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곳 역시 우리가 사는 지상임을 확신한다.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는 3부작 ‘세속적 쾌락의 정원’(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에서 낙원에서 지옥으로 가는 것은 지상의 쾌락과 죄의 결과이므로 사람들은 영적인 감화를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현대인이 그의 그림에 공감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기 역시 고통 받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보스에 크게 영향 받은 영국의 현대미술가 라퀴브 쇼(Raqib Shaw 1974-) 역시 ‘잃어버린 천국’ 시리즈에서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가 물질적 정신적 폭력이 난무하는 곳임을 풍자와 아이러니로 표현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아버지 이삭이 지시해 야곱이 아내를 구하려 하란에 있는 외가로 가던 중 루스에 이르렀다. 꿈에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천사가 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는 구절이 있다. 천국을 향한 꿈이 담긴 ‘야곱의 사다리(Jacob‘s Ladder)’는 영국의 화가이자 낭만주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야곱의 사다리’(1805, 런던대영박물관) 등 유명 화가들에 의해 차용돼 캔버스에 담겼다. 중국 출신의 설치미술가 차이 구어창(Cai Guo-Qiang 1957-)은 2015년 중국 취안저우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100세 할머니의 편안한 임종을 위해 금빛의 아름다운 폭죽을 쏘아 올려 약 500m 높이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완성했다. 그에게 할머니는 잃어버린 고향과 그리움, 그리고 그 자신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이 삶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천국과 지상이 같은 곳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현자들이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실 인식과 삶에 대한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이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 레드 제플린(영국의 록밴드 1968-1980)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 가사 중 ‘그녀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믿는답니다. 여인이여, 당신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당신의 계단이 바람의 속삭임 속에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라는 소절이 있다. 젊은 시절 심취했던 이 곡이 진정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제주도에는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 1937-2011)이 만든 풍(바람)미술관이 있다. 수풀 사이에 있는 헛간과 같은 좁은 공간 안에서 나는 붉은 소나무를 이어 만든 판자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둘러쌌던 찬·더운·시원한·습한 바람, 그 모두가 그냥 바람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 또한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음을.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이 지금 바로 여기에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갤러리이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