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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갤러리대표 국제신문 아침숲길 칼럼게재
[ 2022-05-11 10:38:53 ]
글쓴이  
관리자      
국제신문


[아침숲길] 미술이 사랑한 소설

  •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  |   입력 : 2022-05-10 18:32:22
  •  |   본지 22면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만큼 소설의 극적인 요소를 강력하게 표현한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등장인물 ‘오필리아’의 죽음을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오필리아’는 연인인 햄릿의 칼에 아버지가 살해되자 그 충격으로 미쳐서 물에 빠져 죽은 비운의 여주인공이다. 노래를 부르며 죽어가는 그녀의 죽음은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회화로 표현돼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 놓인 한 개인의 처참한 인생을 대변하는 듯하다.

‘시는 말하는 회화, 회화는 말 없는 시’라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말했듯이 문학과 미술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서로를 보완하며 보다 효과적인 결과물을 창출해낸다. 독일의 미술사가 빙켈만에 따르면 텍스트와 조형의 상호보완으로서, 문학은 회화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미술은 서정언어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문학을 소설에만 국한시켜 말한다면 표현 형식은 바뀌어도 미술작가는 소설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강조하는 메시지를 그들만의 조형언어로 효과적으로 전개하며, 결과적으로 창조해 낸 미술작품은 소설 내용과 중첩되는 고차원의 시각적 경험과 감동의 순간을 제공하게 된다.

한국화가 김선두가 소설가 이청준의 ‘눈 길’, ‘서편제’ 등을 모티프로 그린 ‘작은 노래’와 ‘느린 풍경’ 시리즈는 소설이 주는 감동을 넘어서는 시각예술로서의 또 다른 울림을 경험하게 한다. 그는 이청준이 ‘삶에 지쳐 돌아온 자들을 위한 휴식과 위안의 장소, 무엇을 더하고 덜할 것이 없는 관용의 성지’라고 규정한 고향을 화폭에 담아 그들의 고향(전남 장흥)을 공유하고 우리들 각자의 고향을 소환하게 한다. 설치미술가 양혜규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여배우가 홀로 낭독하는 방식으로 전개함으로써 설치미술과 공연예술의 새로운 해석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미술 장르의 관계성이나 형식성에 몰두한 나머지 소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철학을 놓쳐 버린 듯한 안타까움을 남겼다.

미술이 소설에 접근하는 현대적이고도 실험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전시는 소설과 미술이 결합하여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한 훌륭한 전시였다고 생각된다. 전시의 주제인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괜찮아’는 재일동포 4대가 겪은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통해, 한일 근대사에서 소외당하고 핍박받은 사람들을 역사에 굴하지 않는 새로운 서사의 주인공으로 조명한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에서 가져왔다. 전시장 전체를 영상작품으로 구성한 김현진 큐레이터는 식민과 여성차별에 저항한 안무가 최승희의 삶과 예술을 재구성한 남화연 작가의 ‘반도의 무희’, 여성국극 2세대 배우 이등우의 삶 등을 기록한 정은영 작가의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신이 되는 딸 ‘바리 설화’를 주어진 환경을 주체적으로 극복하는 신화로 재해석한 제인 진 카이젠 작가의 ‘이별의 공동체’를 통해 불리한 역사 속에서 ‘그래도 상관없다’며 당당히 삶에 맞선 ‘파친코’의 여주인공 ‘선자’와 같은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파친코’는 부산의 영도와 자갈치가 주 무대여서 비록 픽션이지만 우리 고향 사람들의 지난했던 삶에 감정을 크게 이입하면서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이 미술의 영역에서 재창조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감동을 받은 소설의 여운을 확장하고 소설을 읽는 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고차원의 숨은 메시지를 알아차리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인물과 우리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고 우리의 팍팍한 인생을 위로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삶에 대하는 방식과 지혜를 배워 ‘파친코’의 ‘선자’처럼 ‘행동하는 침묵’으로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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