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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대표 국제신문 아침숲길 칼럼게재
[ 2021-03-15 14:54:28 ]
글쓴이  
관리자      

[아침숲길] 가장자리에 산다는 것 /배미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2-23 19:14:5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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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어느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었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중략)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프랑스의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 ‘섬’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복잡한 인간사를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지혜로운 삶을 누리려면 성벽으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굳건한 요새를 만들고 그 속에서 비밀스럽게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가 만든 자신만의 격리된 ‘섬’을 ‘가장자리’에 두고 그 속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고민하면서 다양한 인생을 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자리’는 장소나 사물의 끝 혹은 테두리를 의미한다. 가장자리는 공간으로 치면 변두리이고 인생사로 치면 중앙에서 내몰린 박탈감에 젖은 삶이며, 또한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노년기이다. 살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자리를 내어주고 떠밀리듯 가장자리에 머물 때도 있으며, 자연스럽게 나이 들게 된다. 사람들은 누추하고 고생스러운 가장자리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늙어가는 것을 반기지도 않지만 우리 모두는 매일 인생의 가장자리로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가장자리에 머물면 오히려 ‘중앙’이나 ‘젊음’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절대 얻을 수 없는, 지난한 인생에서 인내와 희생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겸손하고 감사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미국의 교육자인 파커 팔머는 모든 것의 가장자리를 ‘중앙에서 밀려난 애처로운 장소가 아니라 한가운데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는 곳,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곳’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착각을 하며 자신이나 타인의 삶을 규정하거나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이란 장에서 타인과 교류하며 성숙해지도록 서로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이 부른 명곡 ‘Both Sides Now’에는 ‘I really don’t know life at all’이라는 가사가 있다. 무지와 통찰로 의심과 확신을 반복하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현기증 나는 인생에서 삶을 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쩌면 정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삶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두려움과 희망을 안고 기꺼이 들어가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오르내리면서 애정과 감정을 주고받는 나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바로 ‘가장자리’일 것이다. 그리고 온전하게 산다는 것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곳도 바로 이 곳일 것이다. 가장자리의 삶을 위해서는 ‘더 위로 더 멀리’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돌려 ‘더 낮은 곳으로 더 가까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중앙과 가장자리의 인생을 구분해 놓았지만, 삶 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중앙과 가장자리로 나뉠 수 없다. 화가 오치균이 그린 세계의 중심 뉴욕(시멘트 야드, 1994)과 광부의 애환이 서린 사북(이른 아침, 2007) 속의 두 풍경은 슬픈 초록과 회색으로 뒤덮인 채 서로 너무나 닮아 있다. 중앙과 변두리가 다르지 않으며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생김새대로 삶을 이어나가는 것, 인생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작가는 자신만의 ‘가장자리’에서 깨닫고 있음이 분명하다. 당당한 삶이란 자기 스스로 가장자리에 두고 중앙의 삶을 선망하지 않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섬’의 서문에 ’오늘 처음으로 ‘섬’을 펼쳐보는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고 썼다. 그는 스승의 ’비밀스러운‘ 삶의 방식에 공감해 ’나만의 섬‘에서 깊은 사색과 자기성찰로 타인을 이해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두가 깨닫기를 바랐다. 그것이 소위 ‘중앙’일지도 모르지만 복잡한 도시의 피상적인 삶에 몸은 담그더라도 내가 만든 섬, 그 ‘가장자리’에서 남루하게 보일지언정 늘 깨어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삶을 나는 동경한다.

갤러리이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