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제   목  
갤러리대표 국제신문 아침숲길 칼럼게재
[ 2020-08-07 13:47:22 ]
글쓴이  
관리자      
홈페이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00731.22017010171 , Hit: 38

[아침숲길] 그리운 수정동 집 /배미애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7-30 18:47:50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세련되지 못한 약도와 출입문 열쇠번호가 적힌 엽서를 받아든 관람객들은 약도에 덧붙인 ‘찾아오시는 길’에 따라 각자 여러 차례 교통수단을 갈아타며 우여곡절 끝에 ‘인천광역시 중구 사동 30번지’의 곧 철거를 앞둔 낡고 쓰러져가는 작은 ‘집’에 도착했다. 백열등, 종이접기, 작은 빨래건조대, 선풍기 등이 널부러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관람객들은 알 듯 모를 듯 풍겨져 오는 자신들의 집 냄새를 맡았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양혜규는 2006년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죽어도 잊지 못할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행복했던 ‘집’을 공개하면서 ‘그 집’을 찾아가는 관람객들의 여정이 ‘그들 자신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를 바랬다. 이 전시에 동참한 관람객들은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우리 집’을 기억하고 ‘그 집’에서의 추억을 소환했다. 그리고 집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 현재의 자신과 중첩되는 순간 평생 ‘그 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집의 사전적 의미는 기본 생존을 보장하는 의식주 중의 하나로서 벽과 지붕으로 둘러싸여 바깥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집은 태어나 처음 가족을 만나고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경험과 아련한 추억을 쌓는 소중한 정서적 장소이다. 오감을 감쌌던 기운과 기억으로 ‘집’은 아름답고 그리운 곳이 되기도 하고, 슬프거나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기억하고, 현재의 집에서 살아가며,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을 갈망한다. 사는 집은 바뀌어도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은 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설치미술가 서도호에게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만든 그의 어릴 적 집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외국생활에서의 문화적 갈등으로 그는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의문을 가졌고, 자신이 살았던 서울의 그리운 ‘집’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한국 ‘집’을 그가 작업하고 또 살았던 뉴욕과 샌디에고, 그리고 리버풀에 옮겨 놓았으며, 이후 그의 뉴욕 ‘집’은 별똥별이 되어 서울과 베니스에도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집의 가치’가 새삼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저마다의 세계이고 우주’인 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소한 일들이 훗날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음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엄마들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지금, 자녀들에게 그들의 작은 우주와 큰 우주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집’의 물리적인 기능보다는 자녀들의 인간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집의 가치에 몰두할 것이다. 하물며 ‘집’을 더 이상 학원의 연장선상에 두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미래가 아니라 그 중심에 ‘나의 집’이 있었던 과거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어머니가 홀로 살고 계신 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살던 곳이다. 50여 년이 흘렀지만 나의 성장기 대부분을 보낸 이 집을 나는 잊지 못한다. 비록 오래 전에 슬럼화되어 주변 환경이 청결하지 못한 동네의 좁다란 골목 안에 자리 잡은 낡은 집이지만 평생 ‘그 집’을 벗어난 나 자신을 어디서도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손 때 묻은 가구와 남편과 자식들과의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는 ‘우리 집’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려 하신다.

양혜규와 서도호가 집에 대한 기억을 형이상학적 메타포로 표현한 밑바닥에는 그들이 평생 간직하고자 한 날 것 그대로의 기억과 사랑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어려운 예술은 모르지만 장성한 자녀들이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우리 집’에 대한 애틋한 마음 또한 예술임을 알고 계신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집에 대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기억이라면 감사해야 하며,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면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살고 있다면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집은 나의 시작과 성장을 기억하고 있으며 결국 마음이 찾는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종종 잊고 사는 수정동 ‘우리 집’이 더 그리워진다.

갤러리이배 대표